[후기] 다테야마 알펜루트 봄 설산 트레킹 – 봄날, 눈의 세계를 걷다
10월 말부터 눈이 쌓이기 시작하는 다테야마는 이듬해 봄까지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고요한 세계예요. 그렇게 깊은 겨울잠에 빠졌던 설산은 벚꽃이 지는 4월 말, 드디어 문을 열어요. 바로 무로도 고원의 15m 눈 터널이 개통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다시 이곳을 찾게 되죠.
제가 방문한 시기는 4월 29일, 일본 국경일 쇼와의 날이었어요. 이 날을 시작으로 5월 10일까지 이어지는 골든위크 동안, 다테야마는 정말 문전성시를 이뤄요. 일본 현지인은 물론, 동남아에서 온 여행자들, 스키어, 트레커들이 한꺼번에 모여들어 봄날의 눈 세계를 즐기는 진풍경이 펼쳐지죠.
다채로운 여정의 시작 – 다테야마역에서 오기자와로
다테야마로 향하는 여정 자체도 매우 특별해요. 저는 다테야마역에서 출발해 오기자와 역 방향으로 알펜루트를 횡단했어요. 이 루트는 케이블카, 고원버스, 전기버스, 로프웨이, 케이블카, 도보와 노선버스까지 총 6가지 교통수단을 갈아타야 하는 여정이에요.
대한항공 인천–고마츠 노선을 이용하면 오전 중 고마츠 공항에 도착할 수 있고, 전용버스를 타면 바로 다테야마역까지 편하게 이동할 수 있어요. 짐 정리를 하고 트레킹을 시작하면 출국한 당일에 무로도 고원의 산장에 도착해 하룻밤을 묵을 수 있다는 점도 큰 장점이죠.
다테야마 알펜루트 여행 정보에 대해서 이 포스팅을 참고해주세요.
https://gooyaji.tistory.com/44
무로도 산장에서의 하루 – 온천과 따뜻한 식사
제가 묵었던 무로도 산장은 콘크리트 건물로 꽤나 잘 지어진 편이었어요. 객실 내 욕실이나 화장실은 없고, 다인실이지만 산행 중 머물기에 충분히 쾌적한 환경이었답니다.
특히 산장 아래가 바로 유황 계곡이라, 건물 안에 유황 온천 시설까지 마련되어 있었던 점은 정말 최고였어요. 하루 종일 눈 속을 걸은 뒤, 몸을 온천물에 담그며 회복하는 그 기분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힐링이었어요.
식사도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나베 요리, 회, 고기 요리, 쌀밥까지 고루 갖춘 저녁 식사에, 추가 비용을 내면 생맥주도 한 잔 마실 수 있었어요. 설산 한가운데서 마시는 맥주라니, 그야말로 인생 맥주였죠.
봄 설산 트레킹 – 겨울과 봄의 경계 위를 걷다
5월임에도 불구하고 무로도 고원은 여전히 설원이에요. 길이 다져진 곳은 걷기 편하지만, 조금만 벗어나면 무릎 이상 깊이로 푹 빠질 수 있어요. 그래서 트레킹을 하려면 동계 등산 장비는 필수예요.
- 크램폰(아이젠): 미끄럼 방지
- 스패츠: 눈 유입 차단
- 방수 바지: 젖지 않도록 보호
그 외에도 고글이나 선글라스, 자외선 차단제, 방한 장갑은 꼭 챙기셔야 해요. 특히 눈 위에서는 자외선이 아래에서 위로 반사되기 때문에, 일반적인 상황보다 훨씬 더 강한 자외선에 노출돼요. 고도 2,500m 이상에서는 산소 농도도 옅어져 호흡이 조금씩 가빠지기도 하니, 속도를 조절하며 천천히 걷는 게 좋아요.
이치노코시 – 고원의 쉼표, 코코아 한 잔
이치노코시에 도착하면 작은 산장이 하나 있어요. 여기에 파는 따뜻한 코코아는 정말 감동 그 자체! 땀을 식히며 마시는 그 한 잔이 설산의 피로를 말끔히 날려줘요.
화장실은 **유료(100엔)**이기 때문에 미리 잔돈을 준비해 두는 것이 좋아요. 그리고 이 고원에는 숲이 없어요. 나무는 있지만 키가 낮은 마가목이나 눈잣나무 정도뿐이라 노상방뇨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면 돼요. 반드시 트레킹 전 화장실을 다녀오는 것, 잊지 마세요!
오야마 등반 – 여유와 주의가 필요한 순간
이치노코시에서 다시 힘을 내어 **다테야마 정상 오야마(3,003m)**로 향합니다. 이 구간은 낙석 주의 구간이라, 반드시 앞사람과 간격을 유지하면서 조심스럽게 걸어야 해요.
길은 오르막과 내리막이 나뉘어 있고, 바위에는 화살표, 동그라미(○), 가위표(×) 등이 표시되어 있어요.
- 화살표는 진행 방향
- 동그라미는 안전한 길
- 가위표는 진입 금지 구간 이 표시를 잘 따라가면 헷갈리지 않고 안전하게 오를 수 있어요.
그리고 이 구간에서 가장 중요한 건 추월을 시도하지 않는 것! 아무리 체력이 좋아도 좁은 길에서는 앞사람이 가는 속도에 맞춰 천천히, 안전하게 오르는 게 가장 중요해요.
오야마 정상 – 신의 기운을 느끼다
드디어 도착한 다테야마 정상 오야마(3,003m)! 이곳은 일본 3대 영산 중 하나로, 정상에는 ‘이자나기노미코토(伊邪那岐命)’를 모신 신사가 있어요. 여름철엔 참배도 가능하지만, 설산 시즌에는 토리이(신사 입구 문)의 절반 이상이 눈에 파묻힌 채로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요.
사실 가장 높은 봉우리는 **오난지야마(3,015m)**이지만, 일반적으로 오야마를 다테야마의 정상으로 부르죠.
정상에 도착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시 이치노코시 방향으로 하산하지만, 진짜 도전은 그 뒤에 펼쳐져요. 바로 오난지야마 – 후지노오리타테 – 벳산으로 이어지는 다테야마 능선 종주 코스입니다.
이 코스는 설산 보행법, 고산 경험, 체력, 장비 어느 하나라도 부족하다면 도전하기 어려운 고난이도 코스예요. 특히 눈과 자갈, 바위가 뒤섞인 능선에서는 크램폰을 착용해도 미끄러지지 않도록 집중해야 하고, 해발 2,800~3,000m를 반복해서 오르내리는 체력이 필요해요.
준비 없이 도전하는 건 매우 위험하니, 만약 종주 산행을 하게 된다면 반드시 아래 장비를 준비하세요:
- 충분한 물과 행동식
- 방한 의류 (레이어링 필수)
- 응급 키트 & 개인 상비약
- 헤드램프, 방수 바지, 예비 장갑 등
국내에서는 간혹 무겁다고 헤드램프나 방수바지 같은 필수 장비를 생략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건 정말 위험한 행동이에요. 다테야마는 아름답지만, 철저한 준비 없이는 맞이해주지 않는 산이니까요.
마무리 – 설산을 걷는 봄날, 그 기적 같은 시간
다테야마 설산 트레킹은 단순히 풍경이 아름다운 여행을 넘어, 계절과 자연, 나의 몸과 마음을 동시에 마주하는 깊은 경험이었어요. 봄이지만 겨울 같은 설원, 하얗게 빛나는 눈 위에서 마시는 코코아, 온천에 몸을 담그며 바라본 고원의 하늘, 오야마 정상에서의 경외감까지—이 모든 순간이 마치 꿈처럼 기억에 남아 있어요.
다테야마는 그저 눈이 많은 산이 아니라, 철저한 준비와 존중이 있어야만 오를 수 있는 신성한 산이었어요.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언젠가 이 눈길 위를 걸으며, 제가 느꼈던 감동을 마주하길 바랍니다. 눈이 녹기 전, 봄날의 기적 같은 다테야마를 꼭 경험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