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클라이밍센터 운영기 마지막 이야기 –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클라이밍이 재미있다. 너무 재미있다.
그래서, 클라이밍을 업으로 삼고 살 수만 있다면 매일매일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랬다.
클라이밍센터를 운영했던 시간은,
내 삶에서 가장 즐겁고도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행복의 추구와 현실의 삶 사이의 괴리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벌어졌다.
오늘은,
그 행복했던 시간의 끝,
폐업 이야기를 하려 한다.
🌃 가장 아프고도 가장 빛났던 밤들
운영 2년차가 되던 어느 시점,
세종시의 3생활권이 입주를 시작하며 상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어느 상가는 100만 원을 낮춰 재계약했다는 얘기도 들려왔다.
하지만 내 상가의 임대인은 최대 인상률 9%를 적용하겠다고 했다.
상권은 흔들리는데, 임대료는 더 오른다.
🎨 낮에는 디자인, 밤에는 지도
매출을 유지하기 위해
늘 홍보에 신경을 썼다.
비즈하우스를 이용해 포스터와 배너를 직접 디자인했다.
낮에는 한가한 시간을 활용해 사무 업무를 보고,
오후부터는 초등부 강습 → 성인부 운영으로
잠자는 시간 외엔 온종일 일만 했다.
1년이 지나자
비염과 축농증이 생겼고,
폐업 후에도 낫지 않아
결국 부비동염 수술까지 받았다.
몸이 무너지기 시작했던 시점,
마음도 따라 무너지고 있었다.
💭 꿈과 상처, 그 모두를 품었던 공간
센터를 운영하는 동안
나는 많은 꿈을 꾸었고,
또 그만큼 많은 상처를 받았다.
첫사랑의 아픔이 10이라면,
첫 사업의 아픔은 100 이상이라고 말하고 싶다.
🧠 전략적 폐업, 그리고 ‘잘한 결정’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
처음엔 세종시 센터를 정리하고
인근의 공주시로 이전할까 고민했다.
임대료도 저렴하고, 나도 조금 쉬고 싶었다.
하지만 생각 끝에 결심했다.
클라이밍센터라는 시설업은
결국 밑 빠진 독에 물붓기라는 판단이 들었다.
그래서,
전략적 폐업을 선택했다.
지금 돌이켜봐도,
나는 정말 잘했다.
- 1인 운영으로 유효회원 70명 이상 유지
- 여름 성수기엔 100명 이상 달성
- 당시 세종시 인구는 겨우 25만
- 대형센터 하나 없는 시절, 진심으로 만든 공간
그건, 내가 해낸 일이다.
🏞 전설 같은 풍경, 그 시절의 흔적
앨범을 뒤지다
문득 발견한 한 장의 사진.
세종지오클라이밍센터의 전경이었다.
누군가는 지금도
“세종시에 클라이밍센터가 있었대”
하고 이야기할지도 모르겠다.
그 이야기가
전설의 고향 같은 소문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했던 나의 현실이었음을
이 사진 한 장으로 다시 증명하고 싶다.
🫂 고마웠던 모든 사람들에게
센터를 운영하며 만난 모든 회원들,
매일 청소한 암장,
한 달에 한 번 세척했던 홀드,
함께 볼더링 파티를 만들었던 친구들,
매일 저녁 찾아와 조용히 벽에 오르던 사람들...
당신들이 있었기에,
그 시간은 빛날 수 있었다.
✍️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그 시절의 나는
힘들었지만 즐거웠고,
지쳤지만 열정이 있었다.
그 밤들이 짧아서 다행이었고,
그 밤들이 찬란해서 아쉽다.
지금은 그 밤들과 작별을 고한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너희는 내 안에서
아직도 환하게 빛나고 있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