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아파트 관리소 근무 후기
2015년 5월부터 7월까지, 나는 짧지만 인상 깊은 경험을 했다. 바로 임대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일했던 시간이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내 업무는 다양했다. 입주민 민원 응대, 공지사항 게시, 전산 업무, 서류 정리, 전화 응대까지, 단지 안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이 관리소를 통해 흐르고 있었다.
하루에도 수십 번 전화가 울리고, 현장에 나가야 할 일도 많았다. 실제로 단지 내 고장 신고나 청소 관련 민원은 대부분 관리소를 거쳐 처리됐다.
오늘도 부디 무사히...
민원만 없으면 아파트 관리소 일은 단조롭고 평화롭다. 오전엔 사무실에서 문서 정리나 전산 입력 같은 행정 업무를 하고, 점심을 먹은 뒤엔 단지 내 시설을 둘러보며 이상이 없는지 점검하는 루틴이 이어졌다.
크게 민원이 들어오지 않는 날이면, 정말 말 그대로 평온한 하루였다.
그리고 오후 6시가 되면 정시 퇴근.
아파트라는 공간, 그리고 그 안의 사람들
내가 근무했던 아파트는 임대아파트였고, 여기엔 크게 두 종류의 입주 유형이 있었다.
하나는 영구임대, 또 하나는 국민임대.
영구임대는 생활보호대상자, 탈북민, 고령자 등 가장 취약한 계층을 위한 주거형태였고,
국민임대는 평균 소득의 70% 이하이면서 차량가액 등 일정 기준을 만족해야 입주할 수 있는 주택이었다.
이곳에 들어와 산다는 건 분명 정부의 배려이고 혜택이지만, 동시에 많은 입주민들에게는 ‘사회가 나를 어떻게 보는가’에 대한 민감함, 즉 자격지심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관리소에 있다 보면 자주 듣게 되는 말이 있었다.
“내가 나라에서 돈 받아 사는 사람이야.”
“내가 생활보호대상자인데.”
“내가 여기 산다고 무시해?”
이건 단순한 하소연이 아니었다. 삶 전체를 규정당할까 두려운 마음에서 나온 말이었다.
실제로 옆 단지의 ‘푸르지오’에 사는 부모들이 “LH 애들이랑은 놀지 마”라고 말한다는 소문은 아이들 사이에서도 공공연히 돌았고,
아이들조차 이 단지를 **‘휴거지(휴먼시티+거지)’**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 단어 하나, 그 시선 하나가 이곳 사람들의 자존심을 얼마나 짓누르는지 현장에서 일하면서 깊이 느낄 수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아파트 단지지만, 그 안에는 그렇게 조용히 ‘층’과 ‘경계’를 나누는 벽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업무 자체는 어렵지 않았지만
관리소의 일은 솔직히 말해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정해진 루틴 안에서 돌아가는 행정 업무가 대부분이었고, 익숙해지면 오히려 단순하고 반복적인 일들이 많았다.
직원은 총 5명이 근무했고, 그 중 3명이 남자 직원이었는데, 야간과 주말 당직은 남직원들만 돌아가며 근무하는 구조였다.
그러다 보니 거의 3일에 한 번 꼴로 당직 근무를 해야 했는데, 이건 생각보다 체력적으로 은근히 부담이었다.
당직 날은 퇴근 없이 밤까지 이어졌고, 주말에도 한 사람이 사무실을 지켜야 했다.
물론 큰 사건이 없으면 조용히 지나가는 날도 많았지만, 예상치 못한 민원이 들어올 땐 혼자서 대처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기에 나름의 긴장감은 늘 있었다.
당직근무라는 고요한 감옥(?)
입사 한 달쯤 지나고 나서부터는 야간 당직근무에 투입됐다.
앞서 말했듯, 남자 직원 셋이 돌아가면서 주말과 야간 당직을 섰기 때문에 **3일에 한 번은 ‘사무실 야근 데이’**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민원만 없다면 정말 아무 일도 없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시간이 ‘아무 일도 없으면서도 쉽게 흘러가지 않는다’는 데 있었다.
비루한 사무실에서, 비루한 밥을 먹고,
혼자 남은 사무실에서 컴퓨터를 좀 하다가,
괜히 집에 전화 한 통 걸고,
그렇게 시간을 죽이는 일이 당직의 실체였다.
그 시간이 아주 특별한 고생은 아니었지만, 묘하게 쓸쓸하고 낯설고, 이상하게도 오래 기억에 남는다.
밖은 어둡고, 사무실엔 나 혼자. 전화벨 하나만 울려도 심장이 쿵 내려앉았던 그런 밤들.
그렇게 조용히 시간이나 죽이다 보면, 저녁 무렵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입주민 한두 분이 있다.
대개는 낮에 출근했다 퇴근하고 온 분들인데, 할 말이 있어서라기보단 그냥 뭔가 불만을 털어놓고 싶어서 오는 경우가 많았다.
“왜 사람이 한 명인데 사무실 불을 다 켜놔요?”
“에어컨은 왜 켜요? 그거 다 관리비 아니에요?”
그런 말을 듣고 있자면, 진짜 속으로는 **‘그래서요, 뭐 어쩌라고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르지만, 겉으로는 웃으며 “아 네, 절전 모드로 해두겠습니다” 하고 넘겨야 했다.
30분, 길게는 1시간 넘게 ‘불 켜고 있는 죄’를 설명해야 하는 날도 있었다.
그럴 때면 진짜 내 기분은 잣 같아졌다.
이게 과연 공공업무인가 싶고, 내가 왜 이 자리에 앉아 있어야 하나 하는 회의감이 스멀스멀 올라오기도 했다.
녹물 사건
어느 주말 당직 근무 중엔 이런 일도 있었다.
“집에서 녹물이 나와요!”
민원 전화를 받은 나는 신입이었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오늘은 주말이라 시설 인력이 근무하지 않고, 월요일에 하자접수하고 처리해드리겠습니다.”
그랬더니 돌아온 말은
“LH는 맨날 다음이래. 뭐 하나 바로 되는 게 없어.”
나로선 억울하고 답답했다.
그래도 민원은 민원이니까, 휴무 중이던 시설과장님께 연락을 드렸다.
곧 과장님이 오셨고, 같이 옥상 쪽 물탱크까지 점검하러 올라갔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현장에서 바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관련 업체가 와서 처리해야 하는 일이었으니까.
사실 민간 아파트여도 마찬가지일 거다.
하지만 이곳은 LH 아파트. ‘정부가 해주는 집’이라는 인식 때문에 모든 게 다 무상이고 즉시 해결돼야 한다는 마인드가 퍼져 있었다.
“벽지 매년 무료로 갈아주는 거 아니에요?”
“샤워기 호스도 관리소에서 직접 바꿔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이런 문의는 실제로 있었다.
그들에게는 이게 국가가 책임지는 집이었고,
관리소 직원은 국가의 대리인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손 하나 까딱 안 하고, 모든 것을 ‘해줘야 마땅한 것’으로 여기는 태도.
그런 기대와 현실 사이에서, 나처럼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는 직원은 그저 사이에 끼어서 기분이 잣 같아질 뿐이었다.
그리고, 점점 사람에게 지쳐갔다
입사한 지 한 달쯤 지나자, 나는 일보다 사람이 더 힘들다는 걸 깨달았다.
하루에도 수차례 민원을 받고, 관리소에 찾아와 불만을 쏟아내는 사람들을 응대하다 보면
‘나는 이들에게 도대체 뭘 해줘야 만족할 수 있을까?’ 하는 자괴감이 들기 시작했다.
그 무렵부터, 내 유일한 취미는 인트라넷의 사건·사고 게시판을 구경하는 일이었다.
전국의 다른 관리소에서 벌어지는 믿기 힘든 이야기들, 갑질 민원, 황당한 해프닝들.
그걸 읽으며 ‘나만 이런 게 아니구나’ 하고 위로를 받았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그런 기록들 속에서 나는 묘한 동지애를 느끼기도 했다.
그 무렵부터, 내 유일한 취미는 인트라넷 사건사고 게시판을 구경하는 일이었다.
전국의 관리소에서 벌어지는 믿기 힘든 사건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올라왔다.
- **“옆집에서 전자파를 쏴대며 자기를 죽이려고 한다”**며 매일같이 신고하는 여성 입주민 이야기.
- “입주민이 창밖으로 던진 화분에 맞아 사망한 관리소장.”
- “보복성 민원 끝에 입주민에게 칼에 찔려 목숨을 잃은 관리소장.”
이걸 읽으면서 ‘와… 진짜 내가 있는 이곳도 언제 어떤 일이 터질지 모르는 곳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웃으며 봐야 할지, 무서워해야 할지 애매한 이야기들이 매일같이 올라왔고,
그 속에서 나는 묘하게 위로를 받고 있었다.
“내가 있는 이곳만 이상한 게 아니구나”
“이 이상한 구조 안에 나도 잠시 있었던 거구나”
그리고 그렇게, 나는 조용히 그곳을 떠났다.
전설처럼 전해지는 이야기들
인트라넷 사건사고 게시판도 무시 못하지만,
진짜 강력한 이야기들은 선배 직원들에게서 전해 내려오는 ‘구전 괴담’들이었다.
- 관리비를 제때 내지 못하던 여성 입주민이 직원과 ‘다른 방식’으로 관계를 맺으며 관리비를 해결했다는 이야기.
- 상습적으로 관리비를 미납하면서도 “내가 내는 관리비로 니들 월급 나가는 거잖아”라며 비아냥대던 입주민에게
어느 날 직원이 그 입주민 몫 급여 분 몇 백 원어치를 십 원짜리 동전으로 바꿔서 던지고 나왔다는 전설. - 단지 근처에서 사건이 터질 때면, 경찰이 용의자를 찾으러 오고,
입주민 중 어딘가엔 그 ‘있던 사람’이 실제로 있었다는 이야기.
믿기 힘든 이야기지만, 관리소라는 공간에 있다 보면 정말로 모든 게 가능할 것 같은 이상한 확신이 생긴다.
그건 일종의 현실이고, 동시에 ‘정신적 생존 매뉴얼’ 같기도 했다.
그리고, 그날이 왔다
그런 일들이 언젠가 나에게도 올 거라는 막연한 예감이 있었다.
인트라넷을 넘기고, 선배들의 무용담을 들으며 ‘설마 내겐 그런 일이 생기겠어’ 싶었지만,
어딘가 마음 한 켠엔 조용한 불안이 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날이 찾아왔다.
일요일 밤 10시.
사무실 불을 끄고 문을 잠그던 순간, 쿵쿵쿵 누군가 문을 세게 두드렸다.
나가보니, 술에 거나하게 취한 중년의 부부가 분이 잔뜩 난 얼굴로 서 있었다.
얘기인즉슨, 경비 아저씨가 전화를 해서 '택배를 가져가라. 며칠째 방치되어 있으니 안 가져가면 버리겠다'고 말했다는 것.
부부의 입장은 간단했다.
“내일 가져갈 거니까, 왜 시비를 거느냐”는 것이고,
경비원의 입장은 더 간단했다.
“경비실이 좁아 둘 곳이 없고, 다른 택배도 밀려 있다”는 거였다.
그 순간, 나는 공공노동자와 입주민, 감정과 감정 사이에 낀 중개인이 되었다.
뭐 하나 결정할 수 있는 위치도 아니고,
내가 직접 관여한 일도 아니지만,
모든 감정은 내 앞에서 충돌하고 있었다.
며칠 전만 해도 뉴스에서 **‘아파트 경비원 처우 개선’**이 사회적 이슈가 되었던 터라
이 상황은 단순한 민원을 넘어서 사회 구조 안의 감정 싸움처럼 느껴졌다.
술기운에 격앙된 부부와, 감정 상한 경비 아저씨 사이에서
나는 마치 경비원의 대리인인 동시에 주민의 민원처리 담당자가 되어야 했다.
그날 밤, 사무실은 다시 불이 켜졌고
나는 30분 넘게 그 감정의 폭풍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그 부부의 요구는 명확했다.
“경비원이 우리에게 직접 사과하라.”
하지만 나는 겨우 스물여덟,
입사한 지 두 달밖에 안 된 신입이었다.
“사과하세요”라고 명령하듯 말할 수도 없었고,
“그건 부당하다”고 정면으로 막아설 용기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말했다.
“내일 아침에 관리 과장님이 출근하시면, 내용 전달해드리겠습니다.”
그랬더니 돌아온 말은
“젊은 사람이 말이 안 통해!”
그들은 다시 경비초소로 향했고,
**‘이대로 두면 일 나겠다’**는 불길한 예감에 나는 뒤따라갔다.
경비실 앞, 술에 취한 두 부부가 경비원 아저씨를 몰아붙이고 있었다.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팔짱을 끼고, 목소리를 눌러가며 대꾸했다.
“경비원의 일은 단지의 안전을 책임지는 일 아닙니까.
이 작은 경비실에 에어컨도 없고, 택배를 계속 쌓아둘 공간도 없습니다.”
그러자 지나가던 동 대표 아주머니가 툭 던졌다.
“안 주임, 입주민이 무조건 왕이야.”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입주민이 왕이면, 경비 아저씨는 뭐란 말입니까.’
다음 날, 그 민원은 그대로 LH 홈페이지에 접수되었고,
나는 어제의 상황을 소상히 관리소장에게 보고했다.
그의 반응은 단 하나.
“그랬구나.”
잘했다는 말도, 잘못했다는 말도 없었다.
그저 이곳에선 일상처럼 일어나는 ‘작은 소동’ 중 하나였던 것이다.
하지만, 내게는 너무나 큰 상처였다.
다음 날 아침, 출근길에 눈물이 났다.
억울하고, 분하고, 아무도 내 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운전 중 갑자기 분노가 치밀어 ‘씨발’이라고 소리치며 액셀을 밟은 순간도 있었다.
어느 날은 밤샘 당직을 마친 뒤, 바로 집에 가지 않고
대청댐으로 향해 한참을 멍하니 앉아 분노를 삭이기도 했다.
그렇게 한 달을 더 보내고,
나는 결국 사직서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