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클라이밍센터를 운영했다 – 세종지오클라이밍센터 2년의 기록
2015년 10월, 나는 세종시에 클라이밍센터를 오픈했다.
이름은 지오클라이밍센터.
아들의 이름에서 따온 이름이었다. ‘GO’, 가고 싶은 대로 가라는 뜻.
그리고 클라이밍도 결국, 끝없이 "Go" 하는 정신이 깃든 운동이니까.
그 이름이 꽤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시작된 2년의 운영은
매일같이 벽을 닦고, 루트를 세우고, 아이들과 놀아주고,
정전과 낙석(?)에도 대처하며,
‘하루하루가 파티’처럼 흘러간 시간이었다.
🪨 벽은 움직이지 않지만, 홀드는 움직여야 한다
클라이밍센터의 핵심은 벽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홀드다.
변하지 않는 벽 위에서, 루트의 재미를 만드는 건 결국 홀드다.
센터 입장에서는 홀드 하나하나가 고정비고,
회원 입장에서는 그것이 이용료 이상의 가치를 결정짓는 요소다.
좋은 홀드는 비싸다.
볼륨 홀드 한 세트에 100만 원을 넘는다.
그걸로 만들 수 있는 건 볼더 한 문제. 딱 하나.
그래서 센터장은
계속해서 고민해야 한다.
투자와 운영, 유지와 세팅 사이의 균형.
그리고 나는 혼자였다.
직접 홀드를 탈거하고,
한 달에 한 번씩 세척하며,
새벽까지 홀드 닦던 시간들이 지금도 선명하다.
클라이밍센터 운영 이야기 #1 클라이밍 홀드
🧗♂️ 홀드, 클라이밍장의 진짜 심장클라이밍센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센터장도, 회원들도, 만장일치로 ‘홀드’라고 대답할 것이다.물론 ‘월’도 중요하다.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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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이밍센터 운영 이야기 #2 벽 보수 _ 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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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등생, 수입이자 스트레스
우리 센터는 초등생 회원 비율이 높았다.
고정적인 수입원이었지만, 동시에 고정적인 스트레스의 원인이기도 했다.
초등 1, 2학년은 받지 않게 됐다.
언어이해력, 체격, 수업 집중도 모두 부족했기 때문이다.
1:1로 봐줘야 하지만, 그만한 요금을 받을 수도 없었다.
그래서 기준을 세웠다.
초등 3학년 이상부터.
그 선택을 후회하진 않는다.
재능 있는 한두 명을 위해 구조를 흔들 순 없었으니까.
클라이밍센터 운영 이야기 #3 회원모집
🧗♀️ 회원 모집, 그리고 매일의 청소 – 운영자로 살아남기 위해 한 일들클라이밍센터 운영에서 가장 중요한 건 뭘까?누구에게 물어도 **‘회원 모집’**이라고 대답할 것이다.끊임없이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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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을 남기는 공간이 되기를
클라이밍센터를 운영하면서 가장 중요했던 건
‘회원’이라는 단어를 넘어서 ‘사람’을 남기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폐업 후 가장 먼저 몰려온 건 상실감과 자책이었다.
하지만 더 시간이 지나자,
그 시절 함께해준 사람들이 그리워졌다.
기억에 또렷이 남는 분들도 있고,
미안하게도 전혀 기억이 안 나는 분들도 있다.
하지만 그때 우리 센터를 찾아준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
클라이밍은 혼자 하는 운동이지만,
결코 혼자 할 수 없는 운동이다.
센터는 그 동료를 만나는 공간이어야 한다.
억지로 만들려고 하면 역효과가 나는 게 커뮤니티다.
그래서 나는 늘 생각했다.
센터장도, 그냥 자기답게,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된다.
클라이밍센터 운영 이야기 #5 사람과 사람
🫂 클라이밍센터 운영기 #5 – 사람을 남기고 싶었던 마음클라이밍센터를 운영하는 데 있어서가장 중요한 요소는 두 말 할 것 없이 회원이다.하지만 나는, “회비를 내는 회원” 너머에 있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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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마다 파티, 그 이름 아래
센터장이라는 건,
매일 파티를 준비하는 사람과 같다.
지루해진 루트를 바꾸고,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기 위해
나는 2년 차에 공인 세터를 초빙했다.
그리고 2박 3일 철야 작업을 통해 루트를 세팅했다.
동시에 볼더링 파티를 열었다.
자필 포스터, 대학 선배들의 무보수 디자인,
텍스트만으로 만든 티셔츠,
세종을 소개하는 카드뉴스까지 만들며
전국 각지의 클라이머를 초대했다.
대전, 청주, 천안, 멀리 서울에서도 찾아왔다.
총 60여 명이 작은 세종의 암장을 채웠다.
정작 기존 회원은 거의 참여하지 않았지만,
그날의 열기는 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 파티는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었다.
클라이밍센터 운영 이야기 #4 날마다 파티
🎉 클라이밍센터 운영기 #4 – 날마다 파티클라이밍센터의 센터장은 모름지기 파티를 준비하는 사람이다.MBTI가 I(내향형)인 나는, 이걸 어떻게 해왔는지 지금도 의문이다.하지만 돌아보면,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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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른 하늘에 낙석이?
인도어 암장에서,
낙석이 떨어졌다.
진짜다.
위층 소아과 병원 공사 중,
수도 설비 작업을 하다 콘크리트를 뚫은 것이다.
암장 바닥에 돌덩이들이 굴러다니던 그 날의 충격...
보상은 받았다.
그런데 청소는 내가 했다.
청소기도 내 거였다.
ㅎㅎㅎ…
그게 끝이 아니다.
또다른 날, 갑자기 조명이 꺼졌다.
위층에서 바닥을 뚫다가 전선을 끊어먹은 것.
전기 기술자를 부르고,
진단을 받고,
결국 처리되긴 했지만,
그 순간의 멍함과 짜증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클라이밍센터 운영 이야기 #6 마른 하늘에 날벼락? 인도어 클라이밍인데 낙석이??
🧱 클라이밍센터 운영기 #6 – 마른 하늘에 날벼락? 인도어 클라이밍인데 낙석이?인도어 클라이밍인데 낙석이 웬 말인가.그날 아침, 출근해서 암장 바닥을 보고 눈을 의심했다.바닥에 돌덩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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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모든 걸 지나고 나서
짧은 2년이었다.
그 안엔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매일 청소하고, 홀드를 닦고,
아이들과 놀아주고, 회원을 관리하고,
사람과의 거리 사이에서 고민하며
사업자와 리더 사이를 오갔던 날들.
나는 클라이밍을 그다지 잘하지 못하는 운영자였다.
하지만 그만큼 다른 방법으로
“좋은 암장을 만들기 위해” 애썼다.
그리고 지금,
이 모든 시간을 돌아보며,
그때 함께해준 모든 사람들에게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 마무리하며
클라이밍센터를 운영한다는 건
단순히 암벽을 세우는 일이 아니다.
그 벽 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도전하고,
포기하고, 다시 붙잡고,
때로는 서로를 응원하고, 지켜보는 공간.
그런 곳을 만들고 싶었다.
그리고, 짧았지만
분명히 그렇게 만든 순간들이 있었다.
클라이밍센터 암벽장 창업
🧗♂️ 지금은 없지만, 가장 뜨거웠던 순간 – 세종지오클라이밍센터 창업기이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맞을까?글을 쓰기 전에는 망설였다. 하지만 더 시간이 지나면 기억이 흐릿해지고, 언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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